피아노학원비에 대한 기억

어느날 피아노 앞에 앉아있던 네가 말했어. 갑자기 어렸을 때 얘기를 했어. 몇 학년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한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아니야. 6학년때 전학을 가서, 아마 6학년이 아니었고… 정말로 거기까지는 모른다고 말했어. 학원비를 봉투에 정성스럽게 담아 선생님께 드리던 시절이었는데. 너의 엄마가 지금은 보고싶은 너의 엄마가 봉투에 넣어준 피아노 학원비를 학원 근처 오락실과 문구점에서 군것질하는데 까맣게 잊어버려서 한달간 학원을 안갔어. 오락실의 맛을 막 알게 된 동심에,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별 대책 없이 굳이 학원비 봉투를 열어놓고 당시 어렸을 때는 절대 어디서 만지지 못했던 파란색 만원권을 꺼낸다는 건 정말 대담했던 것 같다. 그래도 오락실에 있을 때는 너무 즐거웠대. 그동안 남들이 하던 일만 바라보고 있다가 드디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게 됐다. 으하하하!!! 그렇게 서서히 학원비는 다 떨어지고, 학원에 못 들어가는데 그걸 아는 사람은 세상에 너 하나뿐이었다고. 하루하루 긴장하면서 집에서는 학원에 갔다온다며 들어갈 수도 없는 학원 앞을 서성거렸다고 했어. 분명히 처음 그 돈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큰 돈이었는데, 조금씩 봉투가 얇아져 가면서 어느새 텅 비었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고, 쓰면서도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어. 햇살이 내리쬐는 따뜻한 날씨, 바쁘게 움직이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불안과 외로움.그때의 불안과 외로움은 공포였던 것 같다. 그래서 너는 그 후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오락실과 달콤한 간식 만들기의 기억은 거의 사라지고 학교 앞 학원 2층에서 창밖의 사람들을 파랗게 만든 그 찰나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듣고 있으면 어린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애처롭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그렇게 지내다보니 괜찮아졌을까? 중간 기억은 없다고 했다. 한 달을 가슴 졸이며 지내다 다음 달부터 받은 학원비로 다시 등록했는데, 왜 한 달 만에 학원을 그만두었는지 학원 선생님께 어떻게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완전범죄를 성공시켰다는 사실에 흥분해서 뭐라고 대답해도 그것이 기억에 남을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다지.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이렇게 추억으로 얘기할 수 있지만 나는 안다. 너는 너밖에 몰랐다고 했지만 그것이 결국 완전 범죄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리고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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